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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다

2018.10.08 10:34

시벨의 일요일

조회 수 26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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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가수 김완선의 세븐틴이라는 노래가 있다.
수십 년 세월 저편에 갇혀 있는 자신의 17살 청춘을 만나 안아주고 싶다는 노랫말이 그녀의 우울한 라이프 스토리와 함께 겹쳐져 심금을 울린다.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나는 김완선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에서 벗어났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으로 그녀를 보게 된 것이다. 나에게도 어두웠던 청춘이 있었고 그 시절의 나를 만나 위로해 주고 싶다. 나는 요즘 그 시절에 읽었던 책과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가 있다. 그호부터 15년쯤 지난 내 청춘의 어느 날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어쩌면 그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 때문에 내 인생이 크게 방향을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보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강렬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이 영화를 본 시점이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뚜르게네프의 ‘파우스트’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죽은 유부녀에 관한 이야기다. 한 권의 책이 어떤 때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알제리를 130년간 베트남을 70여 년간 지배하면서 수백만의 민중을 학살했다. 19세기에 시작한 식민지배와 학살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식민지 민중을 죽이고 고문하고 강간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다르지 않았지만, 일본과 달리 상당수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반대해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알제리나 베트남 민중의 독립운동을 직접 지지 지원했고 프랑스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전쟁에 반대했다. 이 영화를 만든 ‘세르지 부르귀뇽’도 아마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반제반전사상을 습득했을 듯하다.


영화는 인도차이나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30대 청년이 아버지에 의해 고아원에 버려지는 12살 소녀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청년에게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돌보는 연인이 있지만, 두통과 현기증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는 그는 그녀에게 열중하지 못한다. 부모 모두로부터 버려진 소녀의 요청으로 아버지 행세를 하게 된 청년은 일요일이 되면 소녀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와 호숫가 숲에서 놀아준다. 피붙이로부터 버림받은 소녀는 오로지 청년을 통해서만 존재 이유를 찾게 되고, 자신이 청년의 연인보다 그에게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되어야지만 버림받지 않게 된다고 믿는다. 소녀의 주도로 이들이 정말 연인이 되어 가면서 청년은 거짓말처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소녀 또한 상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 가지만,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이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청년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기에 아동성애자 (pedophilia)라고 오해하고, 그를 치료했던 의사는 청년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강박관념이 소녀를 죽일 것이라고 곡해한다.

 

흑백의 화면은 줄곧 초겨울 파리 교외의 한적한 호숫가만을 배회하지만, 결코 세월에 바래지 않을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여준다. 안개 자욱한 날 소녀와 청년이 찾아든 호숫가 낡은 카페에서 소녀가 코코아가 아닌 럼주를 주문해 연인들처럼 마시는 장면은 30년이 지나도 또렷이 남아 있다. 소녀와 청년이 나무의 소리를 들으려고 벌이는 의식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소녀가 시벨(Sybele)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장면과 곧이어 이름을 영원히 잊어버리는 장면은 깊은 상처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KMq3nGUXkiP.jpg

 


영화를 다 본 사람에게는 청년의 연인 마들레느와 의사가 나누는 대사는 어찌 보면 불필요한 장면일지도 모르겠으나 감독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인듯하다.

마를레느: 당신들이 병자야, 멀쩡한 척하면서 자기들과 다른 식으로 행복하다고 해서 비정상으로 몰아붙이잖아. 왜? 솔직한 게 못마땅해? 상식만 있지 감정이 없어...

참고로 이 영화는 1962년에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국제 비평가상을 받았다. 50년 전에 상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사고와 감성에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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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denPark 2018.10.10 20:05
    흥부의 마음, 놀부의 생각
    제비와 나를 동일시 하는 정서, 측은지심
    다른 것과 나를 분리해서 판단하는 정서, 부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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