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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농식품부 등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하는 농축어업 보조사업 안내서와 본초강목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A 씨는 어느 날부터 들판에 널린 풀 한 종을 밭에 심었다. 웬 풀을 키우냐는 주변 사람들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A 씨는 불과 몇 년 만에 대박을 터트렸다. 주변 농가 네 명에게 명의만 빌어 만든 영농조합으로 낸 사업계획서가 농업보조금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5년간 수십억 원을 지원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후 A 씨는 군 농업부서 공무원들의 권유에 따라 지자체 단위로 할당되는 유사한 보조사업에도 응모해 보조금의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A씨가 계획해 벌인 사업은 간단하다. 자신은 보조금으로 확보한 자본으로 이른바 건강식품 가공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주변 농가들은 A씨가 재배에 성공한? 풀을 재배해 납품하는 거다. 물론 주변 농가들도 지자체가 주는 보조금으로 시설재배에 필요한 설비와 종자를 지원받았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처럼 보였다. 사업 초기엔 정말 큰돈이 벌리는 거 같았다. 보조금으로 만든 종묘 단지에서 나온 풀을 농가에 보급하면서 돈을 벌었고 그 풀을 가공해 만든 건강음료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당 군 경제담당 부서에서는 다른 보조금을 할당해 인근 대학 산학 어쩌고 하는 센터를 붙여 마케팅을 도와주고 군정 홍보계에서는 미디어들까지 붙여 홍보해주니 거칠 게 없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건강식품 시장의 유행 사이클은 조변석개로 널뛰는지라 초기 특수는 이내 꺼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양길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커지는 보조금 규모에 맞추려니 2~30%인 자기부담금 규모도 커졌다. 당초에 영농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은 바지조합원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성과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자부담금을 충당하는 건 가당치 않았다. 온갖 꼼수를 부려 보조금 집행명세를 부풀려 횡령을 하는 범죄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개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풀을 재배해 납품하는 것보다 종자로 파는 게 더 큰 이문을 남긴다는 걸 눈치챈 일부 농민들이 종자 사업에 뛰어들자 채산성은 더욱 악화했고, 같은 풀로 만든 저가의 유사 상품이 시장에 풀리기 시작하자 진퇴양난이 돼버렸다. 늘 크고 작은 보조금 농사로 닳고 닳은 A 씨였지만 이번엔 너무 크게 벌였다. 어둠이 내리면 늘 술에 의존해 살던 A 씨는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A 씨가 쓰러지고 나자 온갖 치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남은 A 씨 가족에 그치지 않았다. A 씨 영농조합에 풀을 납품했던 주변 농가들은 수년이 지나도록 납품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고 일부 자부담금이 들어간 시설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지금도 수십억 원을 들여 지은 공장은 밤이면 유령의 집처럼 어두운 들판에 서 있다. 이런 시설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널렸다. 퇴비공장을 하겠다고 지은 건물, 도정공장, 온갖 종류의 친환경 어쩌고 하는 농산물 가공공장.

그래도 죽은 자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쪽팔림을 모르니까.

 

 

아니다 살아남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 다른 보조금 농사에 혈안인 자들이 훨씬 많다는 게 이 나라 농촌 현실이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게 내 돈은 얼마 안 들어갔고 어쨌든 그동안 잘 먹고 살았잖아.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되는 중이다. 오늘도 또 다른 A씨가 국민의 혈세로 조성한 보조금을 독식하기 위해 룸살롱을 들락이고 지자체장 딸랑이 짓에 목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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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역화폐와 관련한 화천기사가 올라왔더군요. 지역화폐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괴새겨보고자 좀 오래된 글이지만 올립니다. 8년전 희망신문에 올렸던 기사입니다. 간동울림광장은 마을화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의 화폐

 

화폐는 상품세계 안에서 다른 상품들에 대하여 일반적 등가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모든 상품(노동력을 포함)은 화폐에 의하여 가치가 정해진다. 화폐의 등장으로 인간의 구체적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이 마치 화폐에 의해서 가치를 부여받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반화되고, 마침내 화폐는 만물의 신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한 경제학자는 ‘물신주의’라고 정의했다. 물신주의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사회적 분업에 따른 생산물의 교환) 스스로 창조한 물질(화폐)에 오히려 예속되어 노예가 되어 버리는 소외현상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의 물신주의는 심지어 선물과 같은 질적이고 증여적인 관계조차 그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양적인 교환으로 바꾸어놓는다. 선물의 본질이 선물로 주어진 상품의 가치 즉, 화폐의 단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화폐의 단위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를 획득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조차 없다. 심지어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서도 화폐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서도 기술습득과 같은 일에 화폐를 지불해야 하고 생산에 참여하기 위한 이동도 화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간은 인생의 대부분을 화폐를 쫓아 소비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안에서 화폐 없이 생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지역화폐

 

지역화폐(LETS =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는 1980년대 초 높은 실업률로 침체되어 있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코목스라는 곳에서 마이클 린턴(Michael Linton)에 의해 창안된 지역교환체계다. 자신도 실업자였던 린턴이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현금이 없이도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역화폐운동의 시초가 됐다. 지금은 전 세계에 수천 개의 지역화폐 공동체가 운영 중이며 우리나라에도 대전의 한밭 레츠가 운영하는 ‘두리’라는 지역화폐 등 30여 개의 지역화폐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화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통화체계와 달리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상호부양의 통화체계로서 우리 민족 전례의 품앗이와 유사하다. 다만, 전통적인 품앗이가 노동을 제공한 사람과 제공받은 사람의 관계에서만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면, 지역화폐는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이나 노동을 다른 회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자간에 이루어지는 품앗이라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면 회원 A가 회원 B에게 쌀 한 가마를 제공하였다면 A는 B뿐 아니라 C, D 등의 회원으로부터 자신이 필요한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받을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역화폐 공동체에 참가한 회원은 모두 각자의 계좌가 부여되는데 처음에는 모든 계좌가 0에서 시작하여 다른 회원에게 물품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에 필요한 실제 화폐 가치만큼 +가 되고, 반대로 물품이나 노동력을 제공받으면 -가 기록된다. 지역화폐의 회원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먼저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에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도 생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일자리도 얻게 되는 효과가 있다.

 

 

지역화폐가 운영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할 게 없다. 회원들이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물품 및 노동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공받고 싶은 물품 및 노동을 등록소에 신청하면 등록소는 회원들이 원하는 거래내용을 취합하여 전체 회원에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소식지의 형태로 배포한다. 이것을 본 회원 중에 다른 회원으로부터 물품 및 노동을 제공받고자 하는 회원은 이를 제공할 수 있는 회원에게 연락하여 거래하고 나서 거래내역을 등록소에 보고하면 등록소는 회원들의 거래내역을 회원의 개인별 계좌에 +혹은 -로 정리하여 다시 전체 회원들에게 알린다. 물론 계좌를  -로 무한정 늘려갈 수는 없다. 일정 한도를 넘으면 다른 회원에게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여야 권리를 유지할 수 있다.

 


무너진 공동체를 되살리는 지역화폐

 


 앞에서 살펴봤듯이 지역화폐 운동은 불황으로 인한 실업문제를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지역화폐운동이 초창기에는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윤리적인 중산층에 의해 주도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업자 등 빈곤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지역화폐가 실업, 빈곤, 등 사회적 소외 극복을 위한 지역차원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화폐운동은 또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화폐에 의해 교환되면서 그것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인간의 얼굴이 화폐라는 물신의 뒤에 가려져 사람이 소외되는 비정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과정은 지역 구성원들이 서로 직접 만나 관계를 형성하게 하여 사회적 연대감과 이해증진 및 상호부조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키며 돈이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안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는 빚에 의해 지탱되는 통화시스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위협으로부터 지역 경제의 안정성과 자립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세계화에 따른 국제금융자본의 수탈로부터 공동체의 재부를 지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역화폐는 또한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이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녹색 경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운동에 나선다.

 


서울시가 오는 9월부터 우선 희망플러스와 꿈나래 통장 가입자 3만 가구 약 10만여 명이 참가하는 지역화폐 시스템인 S머니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호주정부가 1992년부터 호주 전역에 지역화폐를 보급하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 첫해에만 1,500개의 사업체를 지역화폐 시스템에 포함시켰지만, 우리나라에서 광역자치단체가 직접 지역화폐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려는 S머니는 "시민들이 서비스와 기술, 물품 등을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전산으로 매개하는 품앗이 지역화폐로, 시민들이 각자가 가진 능력으로 다른 이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형식"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지자체들이 유통해온 지역사랑 상품권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온전한 의미의 지역화폐에 가까운 형태다. 지역사랑 상품권이 지역 자금의 외부 유출을 막는 역할에 한정되는 것에 비해 서울시의 S머니는 지역화폐운동의 긍정적 성과를 수용하겠다는 것으로 대단히 진취적인 정책으로 읽힌다.

그러나 아직 도내에서는 시민사회나 지자체나 지역화폐운동에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글로벌 시장경제의 불황이 눈앞에 닥쳐온 지금이야말로 사회보장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지역화폐에 대한 시민사회와 지자체의 관심과 협력이 절실한 시기일 수 있다. 지역사랑 상품권의 유통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일부만으로도 지역화폐는 훌륭히 운영될 수 있으며 기대 효과 또한 상품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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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현명한 사람이 정치지도자로 성공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권력자의 덕목에서 늘 너그러움이 현명함의 앞줄이었다. 아마도 권력자에게 쥐어지는 칼날이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21세기 들어서도 한국에선 법과 제도에 의하지 않은 채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마구 행사한 절대 권력이 4년이나 유지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이런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촛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시늉하기 쉬운 너그러움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현실로 구현할 능력을 갖춘 현명한 정치인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너그러움만큼 쉽지는 않아도 현명함도 흉내 내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의 박근혜를 떠올려 보라. TV토론만 하면 박의 무지를 여지없이 까발릴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작정하고 준비하면 닭처럼 무지한 인간도 나라를 경영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는가?

 

 

 

하지만 주워들은 견문과 배우고 익혀서 쌓은 체계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학식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몇 가지 수치와 알량한 상식을 군중심리로 버무린 부박한 논리로는 적폐청산도 새사회 건설도 가당찮다.

 

 

 

말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말은 사람의 철학과 식견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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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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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을 복기해 보자.

노태우가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하자 야당은 광장을 등지고 여의도로 돌아간다. 이때부터는 개헌이 아니라 대선이 핵심의제로 떠오른다. 국본으로 모였던 정치세력이 사분오열로 갈라서면서 서로 치열한 대권투쟁의 상대가 되어버린 거다. 상황은 타도대상이었던 집권세력이 재집권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태우의 천하 3분지계는 대성공을 거뒀고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

 

이보다 1년 전 필리핀 민중은 좀 다른 길을 걸었다. 민중의 진출에 놀란 마르코스는 내외의 압력에 못 이겨 86년 대선을 치르기로 한다. 투쟁에 참가했던 야당과 제 정치세력들은 연합체인 민주연합기구(UNIDO)를 중심으로 결속해 아키노를 단일 후보로 내세우고 곧바로 민간선거감시기구를 조직하는데 역량을 집중한다. 민간선거감시기구는 한국의 공감단 수준이 아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대체할 민중차원의 선거관리기구를 지향했다. 선거결과에 대해 중선본은 마르코스의 승리를 선언하지만 민간선거감시기구는 아키노의 승리를 선언한다. 이후 다시 대중투쟁이 타오르고 결국 마르코스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필리핀의 군사 통치는 종말을 고한다. 필리핀의 승리비결은 결국 UNIDO라는 연합전선체가 대체권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데 있다.

 

다시 87년 한국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민중운동대오 안에는 필리핀의 경험을 교훈삼아 당면정세를 돌파할 전술을 고민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관념적 과격성에 사로잡혀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한 허황된 전략구호에 매몰되거나 기성야당 정치인의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당시 한국의 상황은 필리핀과 같지 않았다. UNIDO와 같은 국본은 있었지만 양김이라는 원심력은 국본의 구심력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민중운동의 선택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른바 후보전술이 아니라 대체권력을 만드는데 집중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6.29선언 이후에는 무엇보다 전선체인 국본의 구심력을 보존할 전술이 절대적이었다. 개헌과 대선을 앞두고 다시 집권민정당이 주도하는 장내로 기어들어가려는 양김세력을 끌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대중투쟁의 성과로 얻어낸 6.29 항복 선언 이후에는 당연히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한 과도권력이 관심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운동진영은 임시혁명정부부터 과도민주정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했고 기성정치세력 중에는 유일하게 김대중계가 거국중립내각을 들고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김 중 하나라도 먼저 견인해 내면 나머지도 딸려오게 된다. 만약 이때 국본이 거국내각을 받았다면 김대중계는 물론이고 김영삼계도 장내로 쉽게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본은 당연히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정권에게는 거국내각구성을 압박하면서 내부를 결속해 UNIDO의 민간선거감시기구 수준의 공감단을 조직해 가야 했다. 국본을 실질적인 전선체, 대체권력으로 만들어 갔어야 한다는 의미다.

 

2016년 지금 대중투쟁을 주도하는 조직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다. 87년 국본과 다른 것은 야당이 여기에 들어와 있지 않다는 것. 야당의 불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자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지원 국민의 당 비대위원장이다. 이 한 놈 때문에 야권과 시민사회가 하나로 결속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퇴진행동의 정치력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00만의 국민이 결집하는 시위가 잇따라 조직되고 있는데 그 주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인지도가 1%도 안 나올 거다. 그만큼 퇴진행동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거다. 국본은커녕 광우병대책위 만도 못한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대중의 관심은 당면 투쟁을 이끄는 주체보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쏠려 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버는 격이다. 구지 노무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조직되지 않은 대중은 사회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100만을 넘어 1000만이 모여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보수정치인들의 표밭으로 변하고 만다. 비폭력이 아닌 폭력으로 정권을 무너트려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퇴진행동은 이벤트회사가 아니다. 퇴진행동은 대중투쟁의 구심이고 전략전술을 운용하는 주체여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존재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자기 위신부터 높여야 한다. 홈피도 없이 무얼 하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문에 답하는 것부터 준비해야 한다. 먼저 거점부터 만들고 참가단체로부터 인력을 파견 받아 위상에 걸맞은 체계를 꾸려야 한다.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매일 이 거점에 와서 대기할 정도의 존재감을 구축해야 한다. 시간은 민중의 편이다. 다행히 박근혜가 버텨주고 있지 않은가. 조성된 정세는 야당이 탄핵에 몰두한다고 대중투쟁의 불길이 죽어버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 대중은 날마다 광장에서 배우며 깨어나고 있다. 이들의 조직된 힘은 한국사회를 더 높은 단계로 밀고 갈 것이다. 긴 호흡으로 광범위한 계급 계층 지역을 망라한 연합조직 건설에 힘을 기울인다면 당면 국면에서의 승리 그 이상의 것도 얻을 수 있다. 민중은 단지 박근혜를 끌어내리려고 거리에 나선 것도 아니고 누구를 대통령에 앉히려고 나온 건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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