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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역화폐와 관련한 화천기사가 올라왔더군요. 지역화폐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괴새겨보고자 좀 오래된 글이지만 올립니다. 8년전 희망신문에 올렸던 기사입니다. 간동울림광장은 마을화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의 화폐

 

화폐는 상품세계 안에서 다른 상품들에 대하여 일반적 등가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모든 상품(노동력을 포함)은 화폐에 의하여 가치가 정해진다. 화폐의 등장으로 인간의 구체적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이 마치 화폐에 의해서 가치를 부여받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반화되고, 마침내 화폐는 만물의 신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한 경제학자는 ‘물신주의’라고 정의했다. 물신주의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사회적 분업에 따른 생산물의 교환) 스스로 창조한 물질(화폐)에 오히려 예속되어 노예가 되어 버리는 소외현상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의 물신주의는 심지어 선물과 같은 질적이고 증여적인 관계조차 그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양적인 교환으로 바꾸어놓는다. 선물의 본질이 선물로 주어진 상품의 가치 즉, 화폐의 단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화폐의 단위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를 획득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조차 없다. 심지어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서도 화폐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서도 기술습득과 같은 일에 화폐를 지불해야 하고 생산에 참여하기 위한 이동도 화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간은 인생의 대부분을 화폐를 쫓아 소비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안에서 화폐 없이 생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지역화폐

 

지역화폐(LETS =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는 1980년대 초 높은 실업률로 침체되어 있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코목스라는 곳에서 마이클 린턴(Michael Linton)에 의해 창안된 지역교환체계다. 자신도 실업자였던 린턴이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현금이 없이도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역화폐운동의 시초가 됐다. 지금은 전 세계에 수천 개의 지역화폐 공동체가 운영 중이며 우리나라에도 대전의 한밭 레츠가 운영하는 ‘두리’라는 지역화폐 등 30여 개의 지역화폐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화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통화체계와 달리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상호부양의 통화체계로서 우리 민족 전례의 품앗이와 유사하다. 다만, 전통적인 품앗이가 노동을 제공한 사람과 제공받은 사람의 관계에서만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면, 지역화폐는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이나 노동을 다른 회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자간에 이루어지는 품앗이라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면 회원 A가 회원 B에게 쌀 한 가마를 제공하였다면 A는 B뿐 아니라 C, D 등의 회원으로부터 자신이 필요한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받을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역화폐 공동체에 참가한 회원은 모두 각자의 계좌가 부여되는데 처음에는 모든 계좌가 0에서 시작하여 다른 회원에게 물품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에 필요한 실제 화폐 가치만큼 +가 되고, 반대로 물품이나 노동력을 제공받으면 -가 기록된다. 지역화폐의 회원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먼저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에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도 생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일자리도 얻게 되는 효과가 있다.

 

 

지역화폐가 운영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할 게 없다. 회원들이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물품 및 노동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공받고 싶은 물품 및 노동을 등록소에 신청하면 등록소는 회원들이 원하는 거래내용을 취합하여 전체 회원에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소식지의 형태로 배포한다. 이것을 본 회원 중에 다른 회원으로부터 물품 및 노동을 제공받고자 하는 회원은 이를 제공할 수 있는 회원에게 연락하여 거래하고 나서 거래내역을 등록소에 보고하면 등록소는 회원들의 거래내역을 회원의 개인별 계좌에 +혹은 -로 정리하여 다시 전체 회원들에게 알린다. 물론 계좌를  -로 무한정 늘려갈 수는 없다. 일정 한도를 넘으면 다른 회원에게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여야 권리를 유지할 수 있다.

 


무너진 공동체를 되살리는 지역화폐

 


 앞에서 살펴봤듯이 지역화폐 운동은 불황으로 인한 실업문제를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지역화폐운동이 초창기에는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윤리적인 중산층에 의해 주도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업자 등 빈곤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지역화폐가 실업, 빈곤, 등 사회적 소외 극복을 위한 지역차원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화폐운동은 또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화폐에 의해 교환되면서 그것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인간의 얼굴이 화폐라는 물신의 뒤에 가려져 사람이 소외되는 비정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과정은 지역 구성원들이 서로 직접 만나 관계를 형성하게 하여 사회적 연대감과 이해증진 및 상호부조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키며 돈이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나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안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는 빚에 의해 지탱되는 통화시스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위협으로부터 지역 경제의 안정성과 자립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세계화에 따른 국제금융자본의 수탈로부터 공동체의 재부를 지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역화폐는 또한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이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녹색 경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운동에 나선다.

 


서울시가 오는 9월부터 우선 희망플러스와 꿈나래 통장 가입자 3만 가구 약 10만여 명이 참가하는 지역화폐 시스템인 S머니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호주정부가 1992년부터 호주 전역에 지역화폐를 보급하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 첫해에만 1,500개의 사업체를 지역화폐 시스템에 포함시켰지만, 우리나라에서 광역자치단체가 직접 지역화폐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려는 S머니는 "시민들이 서비스와 기술, 물품 등을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전산으로 매개하는 품앗이 지역화폐로, 시민들이 각자가 가진 능력으로 다른 이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형식"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지자체들이 유통해온 지역사랑 상품권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온전한 의미의 지역화폐에 가까운 형태다. 지역사랑 상품권이 지역 자금의 외부 유출을 막는 역할에 한정되는 것에 비해 서울시의 S머니는 지역화폐운동의 긍정적 성과를 수용하겠다는 것으로 대단히 진취적인 정책으로 읽힌다.

그러나 아직 도내에서는 시민사회나 지자체나 지역화폐운동에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글로벌 시장경제의 불황이 눈앞에 닥쳐온 지금이야말로 사회보장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지역화폐에 대한 시민사회와 지자체의 관심과 협력이 절실한 시기일 수 있다. 지역사랑 상품권의 유통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일부만으로도 지역화폐는 훌륭히 운영될 수 있으며 기대 효과 또한 상품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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